어떤 츠루마루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

츠루마루가 삐친 이야기

츠루사니

★기본적인 주의사항★
연성에 등장하는 남사들의 성향은 원작과 무관합니다.
동인설정이 다수 나옵니다.


★해당 연성의 주의사항★
이 글에 등장하는 사니와의 유흥업소 및 다른 견해들은 글쓴이의 가치관을 100%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글의 배경 및 등장 인물들의 특수성을 감안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혼마루의 츠루마루는 멋지지 않은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남사들이 아무말을 합니다.
캐붕의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오래 전 다른 곳에 [사니와가 호빠 간 이야기 했다가 츠루마루가 삐친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연성을 다듬은 글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건의함에 들어있던 익명의 제보 때문이었다.

"급료를 어디에 쓰건 여러분의 자유니까요. 아직까지는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는 사니와의 앞에는  [외람되오나 출진· 원정시에 여인이 있는 유흥가에 드나드는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디 주군의 처결을 부탁드립니다.] 라고 씌여진 종이조각이 펼쳐져 있었다. 쪽지를 읽게 될 주인을 고려했던 것인지 유흥가라는 비교적 완곡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글을 쓴 이가 언급하는 곳이 단순히 술만을 파는 곳이 아닌 것임은 확실했다.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 추가로 덧붙인 묘사가 없었다고 해도 의미하는 바는 같았을 것이다. 고작 그정도의 일이었다면 굳이 처결같은 말을 써가며 익명의 투서를 날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물론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를 심각한 일탈 내지는 태만한 행위로 여기는 남사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바쁜 사니와를 겨우 그런 일로 번거롭게 만들고 싶어 하는 이는 없을테니까. 그러나 사니와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담담한 태도로 종이를 도로 갈무리해 넣었다. 그것을 건네며 곤란해했던 게 무색해질 정도였다.

 "그건 그렇지만."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오히려 야겐과 집무실에 모여있던 다른 단도들 쪽이었다. 침실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일을 꿰고 있는 것과 주군, 그것도 그러한 일들과 거리가 아주 먼 사람과 이런 화제로 대화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니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모양이었지만. 그녀는 건의함을 흔들어 더 이상의 든게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새로운 서류를 꺼내들던 참이었다. 입을 꾹 다문채 몸둘 바를 몰라하는 남사들을 바라보던 사니와가 말했다.

 "가게에 드나들며 손님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굴지 않는 이상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분을 믿고 있으니까."

 야겐이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사니와는 이 혼마루에서 그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얼마 안되는 사람이었다.

 "대장…. 모두를 신뢰하는건 좋은 일이고 나도 기쁘지만 너무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믿음의 포인트가 뭔가 이상한 것 같아."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건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들 신체 건강한데다가 실제 나이는 그렇다 쳐도 육체적으로는 한창때잖아요? 충분히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제까지나 무작정 영상이나 사진에만 의지해 오른손 신세만 지라고 하는 것도 조금 미안하달까…. 하지만 전 핑크혼마루는 사양이라서요."
 "대장!"
 사니와가 무심하게 늘어놓는 이야기에 야겐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고고타이가 딸국질을 하기 시작했으며 마에다는 들고 있던 펜을 떨어트렸다. 얼굴이 붉어져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된 고토 옆에서 혼자 신이난 미다레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역시 주인님은 정말 멋져! 최고야!"
 "…소리가 너무 큽니다. 미다레."
 "그런데 주인님은 정말 생각 없어? 그거 말이야. 핑―."
 "미다레! 아앗, 죄송합니다 주군."

 마에다가 황급히 미다레의 입을 틀어막으며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붉은 볼을 한 채 허둥대던 그는 이내 제 몫의 서류에 고개를 푹 숙였다. 사니와는 단도들이 조금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제가 하고 싶다고 해도 가만히 있지 않을 사람이 있어서요."
 "대장……."
 "아무튼 그 유흥가 라는게 현세의 불법 업소 같은 곳이라면 곤란하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닐거라고 생각해요. 관리국에서 금지한 항목에도 그런 조항은 없는걸로 기억해요. 물론 그곳에 명시되어 있진 않아도 현대의 기준으로는 명백하게 범죄 행위가 되는 것들이 있기야 하지만 여러분이 활동하는 곳은 현세가 아닌데다가 도검남사 관련 법령은 속인주의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으음……."

 짧은 침묵 끝에 사니와가 다시 말했다.

 "역시 지금은 유흥가에 드나드는 것 자체를 막을 합당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네요. 주인이라고 무작정 무언가를 금지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어차피 그냥 술을 마시러 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그런것까지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요. 또 누가 드나들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나 붙잡고 거기 간 목적이 뭐냐고 묻는건 너무 무례한 것 같고. 혹시 정말로 누군가와 만나거나 야합을 하기 위해 그런 곳에 발을 들인다고 해도 여러분이라면 그저 욕구를 풀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그러는게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상대에게 진심으로 대하며 건전한 관계를 갖고 피임에도 신경 쓴다면 괜찮지 않나 싶은데. 물론 그런 가게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제 개인적인 견해와는 별개의 이야기에요. 왜냐하면 다들 저하고는 살아온 시대가 많이 다르니까요. "
 "저기 대장……."
 "어차피 다들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잖아요? 어려보인다고 해도 외형이 그럴 뿐이고. 말했다시피 저는 모두를 믿고 있기 때문에 다들 알아서 잘 처신할거라고 믿어요. 그런데 협차들은 그렇다 치고 단도들이 가게에 가면 들여보내주나요?"
 "안 들여, 아니 그런덴 가지 않았다구 대장!"

 당황한 고토의 외침에 고코타이의 등을 쓸어주던 야겐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 말도 못한 채 빨간 얼굴로 서류만 내려다 보는 마에다 옆에서 미다레가 숨이 넘어가도록 웃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길래 분위기가 이래?"

 소란스러운 와중에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츠루마루였다. 막 씻고 나온 참인지 머리가 젖은 채였고 어깨에는 수건이 걸려있었다.

 "딱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응? 표정들이 그게 아닌데? 나한테도 말해줘."
 
그렇게 말하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니와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러자 제대로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이리저리 튀었다.

 "앗, 차가워! 서류 다 젖겠네!"

 사니와가 급히 종이들을 모아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여기 오는건 좋은데 좀 닦고 다녀요."

 한숨을 쉰 사니와가 츠루마루의 어깨에 걸려있던 수건을 집어 들자 그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기울여 주었다. 지나칠 정도로 스스럼 없는 태도였지만 그것에 대해 굳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러한 광경은 집무실에 자주 온다면 종종 볼 수 있는 익숙한 장면이었으며 두 사람은 이러한 행동이 자연스러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를 문제삼아 시끄러워지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불만을 제기 하지 않는 측이었기에 분위기는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사니와는 다른 곳에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하며 부드럽게 손을 놀렸다.

 "머리가 짧으니까 씻고 나와서 바로 닦으면 금방 마를텐데."
 "네가 해주는게 더 좋으니까."

 야겐이 슬슬 형제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줘야 하나 고민을 하며 마에다 몫의 서류를 들여다 보던 참이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츠루마루는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사니와가 즐거워보였던게-사실 웃고있던 것은 미다레 혼자였지만-어지간히 신경쓰였던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었는데요."
 "별거 아니니까 나한테도 해줘."

 그가 두 번 이상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기 전에는 절대 끝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이처럼 사니와를 조르는 츠루마루를 보며 야겐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래도 그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주인이 자신의 연인과 사이가 좋은 것은 기쁜 일이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음. 그냥 유흥가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성화에 못이긴 사니와의 대답에 야겐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해의 소지가 가득한 요약이었다. 그것이 연인에게 하는 말이라면 더 그렇다. 야겐은 한숨을 쉬었다. 대장, 건의함에 든 쪽지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돌려말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앞에 있는 사람은 츠루마루 형씨인데. 아니나다를까 사니와의 말을 듣고 묘한 표정을 한 츠루마루가 되물었다.

 "……뭐라고?"
 "유흥가요."

 더욱 더 짧은 대답에 야겐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아, 대장.




 "아니 그러니까……."

 조금 뜸을 들이던 츠루마루가 말을 이었다.

 "주인이 관심 가질만한 곳은 아닌데. 설마 가보고 싶다던가 해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

 츠루마루의 어조가 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꼈는지 미다레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사니와의 패턴과 츠루마루의 패턴 둘 모두에 익숙한 야겐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평화로운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두 사람의 대화에 난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이에 사니와가 되물었다.

 "왜요?"
 "정말 가보고 싶은거야?"

 츠루마루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지만 사니와는 여전히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러면 안돼요?"

 그렇게 말하는 사니와의 목소리에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장난기가 다분했다. 하지만 츠루마루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뚱한 얼굴로 입을 다물어버린 그를 보며 마에다가 말했다.

 "저희가 제대로 설명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저러다 또…."
 "그냥 놔두자.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하, 하지만…."
 "대장…."

 옆에서 형제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야겐이 말했다.

 "난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뭐 큰일은 없겠지만…."
 
역시 자리를 피하는게 좋을까 아니면 만일을 위해 남아있는게 좋을까. 야겐이 그런 고민을 할 때였다.

 "왜 그런 곳에 가보고 싶은건데? 여자에 관심이라도 있는건가?"
 "그건 아닌데요. 그리고 그런데 왜 여자만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남자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게 아니어도 술만 마시러 갈 수도 있는거고."

 츠루마루에게 사니와의 마지막 말은 들리지도 않은 것 같았다.

 "뭐라고? 그래서 거기 남자가 있다면 정말로 가겠다는건가? 안 돼. 절대 금지야. 무엇보다 네가 출진에 동행하는건 위험하다고."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수건을 내려두고 다시 서류를 펼치던 사니와가 무심하게 말했다.

 "굳이 출진에 따라가지 않아도 그런 곳 정도는 갈 수는 있는걸요. 현세에도 그런 가게들은 있으니까. 현세라고 그런 곳들이 모두 안전하고 건전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생각만큼 위험하진 않아요. 그리고 그거 알아요? 요즘은 진짜로 남자만 있는 곳도 있어요. 여자 손님만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그런 곳이요."
 "…그걸 어떻게 아는거지? 그런 장소가 위험한지 아닌지, 정확히 뭘 하는 곳인지는 겉에서 보기만 해서는 몰라."
 "겉에서 보기만 하진 않았는데요."
 "뭐? 무슨 뜻이야?"
 "가봤거든요."
 "……."

 늘 그러하듯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이나 하고 말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런 장소'가 정확히 무엇인지 지칭하지는 않았어도 두 사람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술만 마시는 곳이 아닌 '남자만 있는 곳' 이었다. 그리고 츠루마루에게 있어서, 또 그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혼마루의 모두에게 이 화제는 정말 보기 드문 초대형 폭탄이었다. 사니와는 확실히 이 혼마루에서 야겐과 츠루마루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정적이었다. 집무실 안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팔랑팔랑 종이 넘어가는 소리 뿐이었다. 야겐과 고토, 미다레, 고코타이와 마에다는 숨을 죽였다. 당장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나갈 기회를 아주 놓쳐버린 것이다. 야겐은 사니와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대장, 지금 서류를 보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 츠루마루 형씨의 표정이 아주 심상치가 않다고.

 "언제?"
 "뭐가요?"
 "언제 갔었냐고. 남자만 있는 그런 가게."

 그렇게 말하는 츠루마루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니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지나칠 정도로 평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언제였더라? 아마도 재작년 여름 쯤?"
 "내가 혼마루에 온 다음이잖아."
 "네. 8월 중순 즈음이었으니까. 아, 그날이네요. 게이트 고장 났던 날."
 "그날 늦은게 그냥 게이트 고장 때문이 아니었다는 소리야?"
 "네. 근데 전 게이트 때문에 늦었다고는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늦게 들어왔는데 마침 게이트가 고장 났었던 거예요."
 "…왜 말 안 했어?"
 "뭐를요?"
 "남자만 있는 가게에 갔었던거."
 "…왜요?"
 "왜냐니."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사니와가 츠루마루에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때는 그와 그녀가 딱히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없는 상태의 사니와가 현세의 유흥가에 가든 남자만 있는 가게에 가든, 그로 인한 위법적은 행위가 없었다면 그것은 그저 그녀의 사생활일 뿐이다. 물론 개개인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장소에 드나들고 그걸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말고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사니와의 기준이었다. 츠루마루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는 문제로 딱 잘라서 받아들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야 그럴만도 했다. 츠루마루의 짝사랑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로 사니와가 언급한 재작년 여름의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소 무심한 구석이 있는 사니와 덕분에 그는 꽤나 속앓이를 했고 그것은 현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 남사들도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혼마루안에서 제법 유명한 이야깃거리였다. 그때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는지 사니와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입을 꾹 다문 츠루마루를 빤히 바라보던 사니와가 말했다.

 "연인 사이, 아니 부부 사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만나기 이전의 사생활에 대해서 말하고말고는 본인의 자유 아니에요?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술을 파는 곳에 술을 마시러 가는게 뭐가 나빠요? 그보다 더한 일이 있었다고 해도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위법적인 행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연인이 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면요."

 집무실 온도가 완벽하게 바닥을 쳤다. 아와타구치의 단도들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사니와 뿐인 것 같았다. 침묵 끝에 먼저 움직인 것은 츠루마루였다. 말없이 사니와를 응시하던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제법 컸다.




 "…삐쳤네."
 "응. 그런 것 같아."
 "난 조금 재미있었어. 츠루마루씨 표정 변하는게."
 "…미다레."
 "저, 전 조금 무서웠어요."
 "음. 미안해요. 여긴 다른 분들도 있는데 그만……."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는 사니와느 여전히 서류를 붙들고 있었지만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런 사니와를 보며 야겐이 말했다.

 "대장은 직설적인 편이니까."
 "그런가요."
 "그래."

 확실히 사니와와 남사들 간에는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 역시 그런 것을 여러번 느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상하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가 쭉 보아온 사니와는 결코 허투루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제 주인이 그런 곳에 간 것이 진짜라고 해도 문제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가 느끼기에 사니와가 했던 말들은 본인의 경험담이라기 보다는 그저 가치중립적인 논리를 이야기 한 것에 가까웠지만 설령 그것들이 정말 사니와의 과거 경험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그 뒤에 츠루마루가 진심으로 화낼 만한 일 같은건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난 그런 대장이 좋지만 그래도 츠루마루 형씨 앞에서는 조금 돌려서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 알다시피 좀 그렇잖아? 성격이 말이야."

 어찌되었든 시작부터 끝까지 오해를 하기에 충분한 흐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츠루마루는 사니와의 일에 한해서 종종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곤 했던 것이다.

 "그건 알지만. 츠루마루랑 이야기 하고 있다 보니까 어쩐지 저도 모르게 더 그렇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대장…."
 "처음에는 반쯤 장난이었는데 자꾸 캐물어보니까 저도 모르게 조금 욱하기도 했고요."
 "정말 둘 다 물러서는 법이 없다니까. 어린애들도 아니면서."
 "좀 그런 것 같긴 해요."
 
 그렇게 말하는 사니와의 시선은 줄곧 바닥에 떨어진 수건에 향해 있었다.

 "음…. 한번 가봐야겠어요."

 사니와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쨌건 좋지 않은 방식으로 대화를 끌어간 자신도 기름을 부은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때 집무실 문이 열렸다. 그 앞에 서있는 것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츠루마루였다. 그는 가만히 사니와를 응시했다. 사니와 역시 조용히 그를 올려다 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츠루마루 쪽이었다.

 "나랑 이야기 좀 해."
 "네. 해요."
 "그럼 자리 비켜줄게, 대장."
 "아니요. 이대로는 역시 분위기도 좀 그래서. 지금은 바람을 쐬어야 하는 타이밍인 것 같으니 그냥 나갔다 올게요. 다들 앉아 있어요."

 사니와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려던 아와타구치의 단도들을 만류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사니와가 휘청거렸다. 서두르다 중심을 잃은 모양이었다. 그것을 본 츠루마루가 재빨리 다가왔다. 입을 꾹 다문 채 사니와가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준 그는 그대로 손을 잡고는 밖으로 향했다. 사니와가 제대로 문을 닫을 새도 없었다.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고코타이가 말했다.
 
 "저, 주인님은 괜찮을까요?"
 "응. 아마 별일 없을걸."

 야겐이 대답했다.

 "이럴땐 먼저 마음을 준 사람이 지는 법이거든."

현세에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그 말 그대로 야겐은 단 한번도 그가 이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은 이 혼마루에서 서로를 가장 신뢰하지 않는가. 이따금 그 모습이 부러울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조금 전의 츠루마루는 또 어떠한가. 그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사니와를 살피며 그녀의 안위를 우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마 이번에도 큰 일은 없을 것이다.




 사니와는 앞서 가는 츠루마루의 등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서로 사소한 말다툼을 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기분이 가라 앉아 보이는 그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츠루마루를 선뜻 따라 나설 수 있는 것은 그를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기보다 질투가 심하고 의외로 속이 좁은 면이 있는데다 때때로 뒤끝이 있어서 손이 많이 가긴 해도 츠루마루는 여태 단 한번도 사니와에게 험하게 군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조금 전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해 휘청대던 자신을 잡아주던 것은 물론 팔이 붙잡힌 채 뒤따라 걷고 있는데도 힘들지가 않았다. 그가 일부러 느리게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잡힌 손목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가 손에 거의 힘을 주고 있지 않았으니까. 츠루마루는 지금도 그녀를 배려하고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도검남사인 자신과 사니와의 차이를 잊지 않는 섬세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 혼마루에서 사니와가 하는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이도 바로 그였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일단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듣고, 그리고 믿어준다. 본디 남에게 속마음을 잘 내보이지 않던 사니와가 뭐든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것, 또 서로가 가진 아득한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지금과 같은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그의 그런 노력 덕분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분명히 오해를 풀 수 있을 터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제대로 이야기 한다면 그는 분명 이해해 줄 테니까. 그리고 잘못한 부분은 확실히 사과를 하자. 사니와가 그런 다짐을 했을 때였다.

 "앗."

 다른 생각을 하던 사니와가 앞서 가던 츠루마루가 멈추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해 그대로 부딪혀버린 것이다. 그에 놀란 츠루마루가 바로 뒤로 돌아 비틀거리는 사니와를 붙잡았다.

 "괜찮아?"
 "아, 네. 괜찮아요. 고마워요."
 
 그리고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츠루마루의 얼굴에는 더이상 화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있잖아."

 잠시 사니와를 바라보며 머뭇거리던 그가 말했다.

 "미안해."
 "네?"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아니 저기 이건 츠루마루가 멈춘걸 제가 못봐서……."
 "그게 아니라. 아까 말이야. 그런 식으로 말해서 미안해."
 "그거야 말로 츠루마루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츠루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니 맞겠지. 그때 우리는 정말 아무, 그래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난 그때 있었던 일을 그런 식으로 추궁할 권리가 없지. 그런식으로 따지고 드는건 너를 존중하지 못한 행동이니까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머리로는 분명히 그걸 알았는데…."
 "츠루마루."

 사니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나 싶더니 제풀에 놀란 츠루마루가 먼저 손을 떼버렸다. 잠시 어찌 할 바를 몰라 망설이던 그는 그대로 사니와를 껴안아버렸다. 츠루마루의 품에 안긴 사니와의 귓가에 희미하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 화가 났어. 그때 너와 함께 했을 상대를 생각하니까 그렇게 되더라. 누군지도 모르면서, 아니 있었을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난 분명 너를 믿는데도 그 순간엔 그랬어. 난 네 옆자릴 얻은 것 뿐이고 과거의 일을 따지고 들 권리를 얻은건 아닐텐데, 그냥 싫었어."

 그렇게 말한 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니와의 귓가에 살랑거리는 숨결이 와 닿았았다. 그녀는 대답대신 츠루마루의 등에 살며시 팔을 둘렀다. 그 순간 그가 크게 움찔거렸다. 츠루마루는 여전히 긴장한 상태였다. 도검남사와 인간 여자의 완력 차이는 인간 남녀간의 차이보다도 훨씬 크기에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북받쳐 저도 모르게 사니와를 다치게 할까봐서.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는 것은 소중한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필시 엉망이 되었을 자신의 얼굴을 사니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덤이다. 그런 츠루마루를 사니와가 살며시 쓰다듬었다. 굳어있던 어깨가 풀리는가 싶더니 츠루마루가 사니와를 조금 더 끌어 당겼다. 완전히 가슴에 파묻히자 두근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려왔다.

 "그래서 그런 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자가 있는 가게에 가고 싶다느니 하는거. 물론 농담인건 알아. 네가 진심으로 날 속이고 다른 상대를 만나러 갈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하지만 그런 말은 정말 장난으로라도 듣고 싶지 않아. 그리고 단순히 술을 마시러 가는 거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술이 있는 곳엔 질이 나쁜 녀석들이 꼬이게 마련이라 네가 그런 곳에서 혼자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정 가고 싶거든 나랑 같이 가. 아니 꼭 내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혼자 가지만 마. "
 "…미안해요."

 츠루마루의 등을 토닥거리며 사니와가 말했다.

 "진심이 아니었다는거 알아줘서 고맙고요. 조금 전엔 저도 좀 지나쳤다고 생각해요. 더 제대로 말했어야 했는데."
 "응…. 앞 뒤를 너무 잘라먹긴 했지."
 "알아요. 앞으로는 잘라먹지 않고 전부 이야기 할게요. 그리고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을 거고 가고 싶어 하지도 않을게요."
 "응…."
 "아 그리고 그거요. 남자가 있는 가게요. 현세에서는 호스트바라고 하는데요. 거기 간건 사실이긴 한데…."
 "……."
 "앗, 그냥 별 일 없었다고 말해주려는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해도 엄청 신경쓰이잖아요. 그날은 그냥 술을 좀 마셨던 것 뿐이에요. 그리고 생각보다 재미가 없길래 일찍 나와서 다른데로 갔어요. 물론 거긴 평범한 술집이었고요. 거기서 붙이 붙는 바람에 늦었던 거예요."
 "재미도 없는데 대체 왜 간거야."

 츠루마루가 툴툴대자 사니와가 말을 이었다.

 "이건 조금 핑계 같이 들리긴 하는데, 제가 먼저 꺼낸 이야긴 아니었어요. 어쩌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됐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취기가 올라서 그런가 다들 평소보다 대담해져서 분위기에 휩쓸렸던거죠. 호기심이 생겨서 그냥 따라가긴 했지만 그 다음엔 한 번도 간적 없어요. 그럴 예정도 없고. 말했던대로 별로 재미가 없었고 술은 역시 친한 사람들이랑 조용하게 마시는게 더 좋아서요."
 "응."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참에 말할게요. 제 과거의 연애사는 츠루마루가 이미 알고 있는 그것 말고 다른 건 없어요."
 "아 그놈. 생각하니까 또 화가 나는데."
 "지난 일인데요 뭘. 이제 정말로 아무 사이도 아니고."
 "지난 일이라도 너에게 그런 식으로 대한 녀석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빠. 그냥 전부 잊어버려. 나도 더는 안들을래."
 "어차피 더 할 이야기도 없는데요. 진짜 그게 전부라서."
 "하아. 그건 그냥 처음부터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아. 괜히 들었어."
 "안물어보고 버틸 자신은 있었고요?"
 "글쎄. 모르겠는데."
 "아마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더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래봤자 그건 제가 사니와가 되기 전의 일인데요. 츠루마루가 초기도였어도 그걸 없던 일로 하는 건 무리일텐데요."

 그 말에 츠루마루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사니와는 또다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포옹을 하고 있었기에 서로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운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가 다시 심통난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늦게 현현한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닌데요."
 "그럼 무슨 뜻인데?"
 "음. 그건……."

 역시 츠루마루는 속이 좁다. 아니 이 입이 문제인걸까. 고민을 하던 사니와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비장의 한 수를 던졌다.

 "…가슴만질래요?"




  사니와가 처음 유흥가 라는 말을 입에 담았을 때는 그녀가 어째서 그런 곳에 관심을 가지나 싶은 정도의 마음이었다. 자신이 없을 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길래 그런 단어가 나오는건지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대화 상대는 아와타구치의 단도 아이들-걱정되는 인물이 아예 없었느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었지만-이었기에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혹시 남사들이,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그런 곳에 드나들었다고 여기고 있는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사내들이 술과 색을 파는 곳에 드나드는 것이 큰 흠이 아니던 시절은 분명히 있었고 저 역시 그런 시대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이는 어떨지 몰라도 자신은 그런 곳에 절대 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해주어야 하나 싶어 고민을 했더랬다. 하지만 이야기는 정말 상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사니와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그 순간에는 그녀가 호위도 없이 위험천만한 곳에 갔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기가 일었다. 거기에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반사적으로 오래 전에 들었던 사니와의 옛 상대에 대한 것들이 떠올랐다. 불길은 겉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와닿자 혼란스럽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사그라들었다. 이어 그 자리를 채운건 아차 싶은 감정이었다. 혹여 자신의 말투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대화 도중에 갑자기 나와버린 것 때문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집무실로 돌아가 문을 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무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사니와를 데리고 나왔다. 먼저 이야기를 하자고는 했지만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안한 와중에도 그녀가 또 위험한 곳에 발을 디딜까, 행여나 다른 이의 눈길을 받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이대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버리고 싶다는 비뚤어진 생각이나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렇게 갈팡질팡 소란스러운 마음으로 지금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걸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는데 내내 손안에 느껴지던 온기와 부드러운 촉감이 어느 틈엔가 모든 것을 물렁물렁하게 녹여 버렸다. 그래. 어쩔 수 없었다.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그녀의 과거가 어떻건 무슨 말과 행동을 하건 상관없다. 그 어떤 상황이 닥쳐온다고 해도 자신이 먼저 사니와를 놓을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니와의 시간을 생각하자 속이 상했다. 그리고 그가 그런 고민에 빠져 있던 잠깐 사이에 사니와가 다칠 뻔했다. 혼자만의 생각에 정신이 팔려 아무런 말도 없이 멈춰섰기 때문이다. 도검남사와 인간은 체력이나 완력은 물론 몸의 견고함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자신이 살짝만 쥐어도 사니와는 금새 시퍼런 멍이 들어버릴 터였다. 살짝 부딪히는 정도로도 자신보다 몸이 작고 가벼운 사니와는 훨씬 많이 밀려난다. 의도치 않게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만약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툇마루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정말 어쩔 뻔했단 말인가. 츠루마루는 이런 식으로 사니와를 데리고 나온 것을 크게 후회했다. 이렇게 막 잡아 끌고 오는게 아니었는데. 그러고보니 걸음이 너무 빠르지 않았나? 붙잡은 곳이 아프진 않았을까? 다음 순간 그는 사니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니와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마음이 놓였던 것은 모든 것이 그저 자신의 오해였다는 점이다. 덕분에 미안함이 더 커지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행복했다. 팔 안의 온기와 코 끝에 느껴지는 체향이 눈물나게 사랑스러워 예전의 그 자식이든 뭐든 지금이라면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는데…….




 "가슴 만질래요?"

 갑작스러운 발언에 화들짝 놀란 츠루마루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뭐, 뭐, 뭐라고? 너, 넌 갑자기 무슨 말을!"

 사니와가 당혹감에 말문이 막힌 그를 보며 작게 웃었다.

 "아니 왜 그렇게 놀라요? 한 번도 안 만져본 사람처럼."
 "그, 그건…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넌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그야말로 넋이 나갈 지경인 츠루마루에게 사니와가 한 걸음 다가섰다. 그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사니와가 더 빨랐다. 그녀는 팔을 뻗어 츠루마루의 양 뺨을 감쌌다.

 "지금 츠루마루 얼굴 엄청 빨갛고 뜨거워요. 이게 홍백인가?"

 …지금 제 얼굴이 무슨 꼴을 하고 있을지는 차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장 뒤로 돌아 숨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자신의 볼을 만지작거리는 손의 감촉이 좋아서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사니와의 웃는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살짝 발돋움을 한 사니와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는 사니와가 떨어져 나간 다음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가벼운 숨결 뒤에 남은 것은 아쉬움이었다. 이번에는 츠루마루가 사니와를 이끌었다. 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두 번째는 처음처럼 금방 끝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단번에 입장이 역전되었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작은 몸을 제 품안에 단단히 붙잡아 가두고 혀를 얽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한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워서 ,온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아 머릿 속에 아무 것도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저편으로 밀어두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다 잊자. 숨이 달렸는지 그를 밀어내는 사니와의 손길이 오히려 그를 더 자극 했다.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한 갈증이 났다. 힘들어하는 이를 배려해 잠시 떨어졌던 그는 다시 깊게 입을 맞추었다. 여전히 부족했다.




 츠루마루는 사니와를 한참이나 몰아간 다음에야 놔주었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은 그는 숨을 몰아쉬느라 비틀거리는 사니와를 제 무릎 위로 끌어 당겨 안았다. 힘이 빠져 늘어진 사니와가 츠루마루의 가슴에 등을 기대자 그는 제 앞의 목덜미에 고개를 기울였다. 가느다란 숨소리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쿵쿵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안타깝고 애가 타서 초조했다. 이토록 가까이 있는데도 그랬다. 무엇을 해야 그런 감정이 가실런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싫지가 않았다.
 



 둘은 그렇게 말 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츠루마루였다.
 
 "…그런데 아까 그거 말이야. 진짜 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던거야?"
 "어떤거요?"
 "그, 유흥가."
 "그 이야기는 하지 말라면서요."
 "그래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알고싶어."
 "이것 때문에 그래요."

 사니와가 주머니에서 꺼낸 종잇조각을 츠루마루가 받아서 펼쳤다. 어깨 너머로 쪽지를 들여다보던 그가 말했다.

 "이런걸 보낸건 대체 어떤 녀석이야?"
 "글쎄요."
 "참, 난 안갔어."
 "왜 그래요? 아무 말도 안했는데."
 "아무튼 난 절대 아니야."
 "그렇겠죠."
 "진짠데."
 "네. 알아요. 츠루마루가 갖고 다니는 정도론 그런데는 어림도 없을 거라서."
 "뭐? 어떻게 알아?"
 "정확히 뭘 말하는 거예요?"
 "내가 얼마를 갖고 다니는지 어떻게 아는데? 그보다 그게 그런 곳에 못갈 정도라는건 또 어떻게 아는거지?"
 "그거야 츠루마루가 집무실에 주머니를 자주 놓고 다니니까 그렇죠."
 "혹시 열어봤어?"
 "그건 아니지만 옆에 치워두거나 할 때 들어보게 되잖아요. 그리고 그낭 농담이에요. 아무래도 과거의 물가는 세세하게 알기가 어려워서 잘은 몰라요. 그냥 술값만 해도 꽤 되지 않을까 싶어서."
 "뭐야, 놀랐잖아."
 "그런거 좋아하잖아요."
 "이런건 싫어."
 "아무튼. 그런게 아니어도 안갈거라는건 알아요. 츠루마루가 하는 말은 믿어요."
 "…나도 널 믿어."
 "믿어줘서 고마워요. 자 그럼."

 그렇게 말한 사니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츠루마루가 자리에 앉은 채 사니와를 올려다 보았다.
 
 "응? 무슨 일이야?"
 "일 하러 가려고요."
 "뭐? 왜?"
 "왜냐니요. 일하다 말고 나왔으니 당연하잖아요."
 "그냥 나중에 하면 안 돼?"
 "안돼요. 그게 아니라도 다들 기다리고 있을거고."
 "그 아이들이라면 눈치가 빠를테니 알아서 돌아가지 않았을까?"
 "어쨌든 안돼요. 그리고 어차피 같이 갈거면서."
 "집무실은 방해꾼이 많이 와서 싫은데."
 
궁시렁거리는 츠루마루의 머리를 사니와가 살며시 쓰다듬었다.

 "빨리 가서 일을 끝내야 마음 편하게 같이 놀지요."
 "……."
 제 머리 위에 얹힌 손을 만지작거리던 츠루마루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떨어졌던 손에 깍지를 껴 단단하게 붙잡은 그가 말했다.

 "도와줄게. 같이 하자."
 "네."

 혼마루의 저녁이 그럭저럭 평화롭게 마무리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이좋게 돌아가던 길이었다. 츠루마루가 문득 제자리에 멈춰 섰다. 꽤나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에게 사니와가 물었다.

 "왜요?"
 "있잖아."
 "네."
 "생각해보니까 아주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뭔데요?"
 "…정말 만져도 돼?"
 "뭐를요?"
 "아까 말했던거."
 "……."
 "왜 그런 반응이야? 그래도 된다고 말할땐 언제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안돼요."
 "왜? 아깐 된다면서."
 "그러게 하랄 때 안하고 뭐했어요? 기회는 이미 지나갔어요."
 "어째서! 왜!"
 "좀 조용히 해요. 다 듣겠네."
 "너무해."
 "자꾸 그러면 주명으로 접근 금지 걸어버릴 거예요."
 "와 매정해."
 "……."
 "아야! 왜 꼬집어?"

 실랑이를 하던 두 사람이 집무실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문이 활짝 열렸다. 이야기를 하겠다며 나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단도들인가 싶었지만 안에서 고개를 내민 것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드디어 왔구나, 주인."

 미카즈키 무네치카였다. 사니와를 발견한 그는 더없이 환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미카즈키? 언제 왔어요?"

 그와는 반대로 츠루마루는 순식간에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긴 뭐하러 온거야?"

 그렇게 묻는 츠루마루의 말투는 꽤나 삐딱했지만 미카즈키는 개의치 않아 했다. 아니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누가 무어라고 하든 오로지 사니와만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말했다.

 "츠루마루 쿠니나가랑 또 다투었다지."

 그러자 츠루마루가 잡고 있던 손을 들어올려 보였다.

 "이걸 봐. 우린 벌써 화해 했다고? 그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거야."

 미카즈키는 그제야 츠루마루 쪽을 돌아보았다.

 "그대가 나에게 무참히 패하는 바람에 주인의 외출에 동행하지 못했던 그날과 같은 표정으로 집무실에서 나왔노라고 이마노츠루기가 전해주더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보지 않아도 훤하지 않은가."
 "무참히 패하다니. 고작 가위바위보 한 번 진 것을 가지고……."

 츠루마루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린 미카즈키가 다시 사니와를 바라보았다.

 "주인이 매번 고생이 많구나."
 "고생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아무튼 마음 써줘서 고마워요 미카즈키."
 "그러니 어떤가? 저런 속좁고 부실한 이는 놔두고 나에게 오는 것은."
 "잠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사실이지 않나?"
 "속좁고 부실? 내가?"

 문득 츠루마루는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신발을 떠올렸다. 아니, 그런 것이 없어도 된다. 3cm 정도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니까.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난 너하고 키 차이도 거의 안난다고? 그리고 나도 그만큼 껴입으면…."
 "그런 이야기가 아니네만."
 "그럼 무슨 뜻이지?"

 그 말에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가린 미카즈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츠루마루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체 뭔데?"

 미카즈키의 그의 시선이 슬며시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츠루마루가 발끈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확인해 봤나?"
 "끔찍한 소리 하지 말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뻔하지 않은가."
 "뻔하다니?"
 "그러니 그대가 그리 매달렸던게지. 주인에게 못된 수작을 했다가 호되게 당하고 미다레 토시로에게 들려 수리실에 들어가야 했던 그날 말이지. 그때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울던 얼굴이 아직도 선한 것을. 그 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주인을 괴롭히지 않았나. 정말 당치도 않은 일이었어. 헌데 주인의 마음씨가 너무나도 고운 탓에 그런 자네를 가엾게 여겼고 결국 그것을 허락했지. 덕분에 그대가 주인의 옆자리를 꿰어찼고."  
 "뭐라고? 각색이 너무하잖아! 난 그러지 않았어!"
 "아닌가?"
 "아니야!"

 그때였다.

 "야습! 암살! 내 특기는 아니지만 정의구현 받아라!!"
 "악!"
 "큭."

 요란한 외침과 함께 츠루마루와 미카즈키가 고꾸라졌다.

 "이 영감님들이 주인 앞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순식간에 태도를 둘이나 해치운 것은 사니와의 초기도인 카슈 키요미츠였다. 그러자 집무실 문에 매달려있던 마에다 토시로가 쪼르르 달려나왔다. 그는 사니와를 제 뒤로 숨기며 카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주군이 곤란해 하실겁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아냐, 이건 그런 정도인 거야, 주인!"

 그렇게 말한 카슈가 사니와를 두 사람에게서 최대한 멀리 떼어놓기 시작했다. 느릿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미카즈키가 가격당한 허리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딱히 문제가 될만한 말은 하지 않았다만."
 "했거든?"

 파르르 떠는 카슈에게 한껏 우아한 얼굴로 웃어보인 미카즈키가 말했다.

 "그저 진실을 말했을 뿐인 것을."
 "뭐야?"
 "진실은 무슨. 나야말로 대체 무슨 죄인거지? 난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그에 질세라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하는 츠루마루를 카슈가 매서운 눈길로 째려보았다.

 "당신이야말로 중죄인이지. 주인에게 치근덕거렸잖아. 내가 다 봤어!"
 "뭐라고? 그게 왜 죄가 되지? 난 그래도 되는 입장 아닌가?"

 그 말에 콧방귀를 뀐 카슈가 소리쳤다.

 "당신에겐 원죄가 있잖아? 창창하던 주인의 인생을 날로 먹어버린 죄!"
 "날로 먹다니, 정말 너무하구만. 난 그날 목숨을 걸었었는데 말이야."

 이번엔 사니와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음. 저기 그건…."
 "괜찮아. 주인은 아무 잘못 없으니까. 다 저 영감이 나쁜거야!"
 "원망도 후회도 없지만 강렬한 기억이었지. 그대로 파괴 당해서 옥강 부스러기로 되돌아 가는 줄 알았지."
 "옥강이 되든 고철이 되든 그건 자업자득이잖아? 그리고 엄살 부리지마! 손도 작고 발도 작고 마음씨도 착한 우리 주인이 살짝 건드린게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맞아봤나?"
 "그럴리가 있어? 난 귀여우니까 당신처럼 맞을 짓 같은건 안해."

 그러자 마에다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슈님까지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건가요? 주군 앞에서!"
 "아앗! 말려들어벼렸어!"

 원통해하며 머리를 부여잡는 카슈를 보며 야겐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아키타와 고코타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둘렀다. 미다레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토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통 이해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혼마루에 상당히 늦게 온 축이었고 현현했을 때 사니와는 이미 츠루마루와 연인인 상태였다. 츠루마루의 짝사랑이 굉장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지만 지금 듣는 이야기들은 금시초문으로 자신이 현현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 정도만을 간신히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조금 외로운 기분이 된 고토가 대화중에 이름이 언급되었던 미다레에게 물었다.

 "저기, 내가 오기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대장이 츠루마루를 때렸어?"

 하지만 그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미다레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야겐이 입을 열었다. 주인이 태도를 일격에 중상으로 만든 날에 대해서.




  그날은 모두에게 다른 의미를 지녔다. 츠루마루에게는 온 몸을 던져 사랑을 쟁취해낸 날이었으며 미카즈키에게는 실연의 날이었고 카슈에게는 철통같다 자부해왔던 방어전선이 처음으로 뚫린 패배의 날이다. 그리고 사니와에게는 정기 건강 검진일인 동시에 남사를 제 손으로 파괴 할 뻔했던 날이었다.

 사니와의 정기 건강 검진은 시간정부 청사 내의 사니와 전용 병원에서 이루어지는데 정기 회의 같은 다른 업무 때와는 달리 검진에는 근시를 대동하지 않는다. 검사 과정에서 내밀한 개인정보들이 다수 노출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것을 딱히 감추지 않아도 되는 관계도 있기에 사니와가 원하는 경우에 한해 남사 동반이 가능했던 적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주인을  따라왔던 남사가 제 동소체의 사랑을  돕겠다고 다른 사니와의 정보를 염탐해 그 사니와의 남사에게 넘겼다가 결국 카미카쿠시로 끝났던 사건 이후로 사유가 무엇이든 남사를 대동하는 것은 엄중하게 금지되었다. 그런 이유로 사니와는 혼자 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런 규정이 없었다고 해도 당시의 사니와에게는 특별한 사이라고 할 만한 남사가 없었기에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뭐, 거기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문제는 사니와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저녁 무렵에 일어났다. 남몰래 탈주한 츠루마루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가 남겨둔 쪽지에 적힌 명목은 마중이었지만 사심이 담긴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간 끊임없이 주인과 단 둘이 될 기회를 노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동안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명 카슈와 세콤들이 사니와를 싸고 돌았던데다 요주의 목록에 올라있던 츠루마루는 유독 살벌한 감시를 받았던 탓이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도 사니와가 홀로 외출하는 그날은 그가 간신히 잡은 다시는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도의 극성에 오도로키 결핍증을 앓고 있던 그는 혼자 있는 제 주인을 발견한 순간 몹쓸 충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문득 사니와와 함께 보았던 어떤 영화를 떠올리고 만 것이다. 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한 그는 그 어느때보다 뛰어나면서도 쓸데없는 은폐력을 발휘해 사니와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구상했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츠루마루는 영화에서 보았던대로 사니와의 귓가에서 박수를 두어 번 쳤던 것이다. 예상대로 그녀는 크게 놀랐지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사니와가 문답무용의 일격을 날려버렸던 것이다. 운동선수의 딸 답게 흡잡을데 없이 깔끔한 발차기는 더없이 훌륭하게 적중했다. 거기에 사니와가 모처럼 기분을 내고 싶다며 꺼내 신었던 반짝거리는 하이힐이 그 효과를 놀라울 정도로 끌어올려주었다. 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사니와의 반응은 정말 예상밖의 놀라움이었다. 사니와는 그 영화를 볼 당시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건 츠루마루가 혼마루 내에서 다른 장난을 쳤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반격이 돌아올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니와가 밝힌 입장은 이랬다. 넘치는 영력 덕분에 귀신 같은건 아무렇지 않아도 나쁜 의도를 가진 인간은 무서운 법이다. 그리고 그곳은 귀신 따위가 나올 수 없는 청정한 구역이었기에 등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린 순간 몹쓸놈이 나타났다고 생각해서-듣고 있던 카슈는 그게 맞다고 말했다-기겁을 했다고 한다. 너무 놀라 경황이 없던 나머지 그 몹쓸놈이 자신의 츠루마루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다리가 먼저 나가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한게 미다레였다. 카슈가 츠루마루의 부재를 발견했을 때 그는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터라 지나가던 미다레에게 부탁해 그를 뒤쫓게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츠루마루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 상태로 미다레 토시로에게 들려 혼마루로 돌아왔고 바로 수리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흔치 않게 난처한 표정을 한 채 그 뒤를 따라온 사니와는 츠루마루에게 미안하다며 그날 내내 그의 옆을 지켰다. 뜬금없는 츠루마루의 부상 소식에 놀라서 달려왔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마음의 상처가 컸는지 정신이 들자마자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도해를 해달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 츠루마루를 달래던 사니와는 결국 소원 카드를 꺼내들게 되었다. 원하는 것 한가지를 들어줄테니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달리는 소리에 그는 바로 이불을 내렸고 당황해 하는 미츠타다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니와와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을 받아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주인 앞에 나타난 그는 약속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책임져달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옆에 있던 카슈가 그것 만큼은 안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놀랍게도 사니와는 그것을 승낙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미카즈키는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 농성을 하다가 정신적인 중상을 입었다며 한동안 드러누워있었다. 꽃같이 가냘픈 주인의 발길질 한 번에 나가 떨어질 정도로 나약한데다 앞으로 사내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녀석에게 절대로 사니와를 보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울 정도로 맞은게 아팠냐는 물음에 사니와가 놀라는 표정이 아찔할 정도로 예뻤고, 또 그 와중에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돌려차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져서 감동을 받아 절로 눈물이 흘렀다고 대답한 츠루마루 때문에 걱정된 마음에 그를 찾아 왔던 미츠타다가 할 말을 잃고 오오쿠리카라가 짜증을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은 사니와만 모르고 있는 덤이다.




 "…정말이야?"

 이야기를 전부 듣고난 고토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내가 봤는걸. 주인님의 일격!"

 그렇게 말하며 미다레가 허공에 다리를 내지르자 아키타와 고코타이가 움찔거렸다. 고토는 고개를 돌려 제 주인을 바라보았다. 형제들이 말한 것이니 거짓은 아니겠지만 역시 상상은 잘 되지 않았다. 그때 츠루마루가 버럭 고함을 쳤다.

 "어쨌든 난 그렇게까지 울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울었던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고? 내 눈물을 그런 식으로 하찮게 여기지 마!"

 두 사람은 여전히 대치중인 모양이었다. 츠루마루의 외침에 미카즈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어째서 그렇게 울었지?"
 "그건…."
 "그건?"

 뜸을 들이던 츠루마루가 얼굴을 붉힌 채 말했다.

 "주인이 예뻤기 때문이야. 아,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하."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카슈가 몹쓸 것을 보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사니와를 그에게서 좀 더 멀리 떼어놓았다. 과거를 회상하며 눈가가 촉촉해진 츠루마루를 응시하던 미카즈키가 말했다.

 "흐음. 좋아. 그대의 체면을 생각해 그런걸로 해두지."
 "그런걸로 해둔다니? 이게 진실이야!."
 "그러니까 그런걸로 해두겠다고."
 "뭐라고?"

 바야흐로 끝나지 않는 말싸움의 굴레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틈만 나면 반복되는 질리도록 똑같은 흐름에 카슈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또 시작이로군."
 "저기, 두 분…."

 주인답게 둘을 중재하기 위해 나서려는 사니와를 카슈가 막아섰다.

 "됐어. 주인. 어차피 금방 안끝날테니까 그냥 들어가자. 더 듣고 있으면 주인의 귀까지 썩어버릴거야."

 그대로 사니와를 집무실에 밀어넣은 카슈는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츠루마루와 미카즈키는 사니와가 집무실에 들어가버린 것도 모르는 채 말싸움을 이어갔다. 여느 때와 같이 소란스러운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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