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쿠사니-페르세포네

페르세포네 외전 오오덴타 시점 中

쇼쿠사니

사챈에서 리퀘스트로 받았던 S가 현현시킨 오오덴타가 본 사건 전부터 이후 까지의 이야기

★기본적인 주의사항★
연성에 등장하는 남사들의 성향은 원작과 무관합니다.
동인설정이 다수 나옵니다.
카미카쿠시, 블랙남사, 블랙혼마루 등등의 취향타는 요소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해당 연성의 주의사항★
글 연성이 아니라 썰 형식 입니다. (외전은 글 연성 형식 입니다.)
등장하는 남사의 성격이 제법 뒤틀려 있습니다.
캐붕의 가능성이 농후하며 얀데레, 카미카쿠시 등의 각종 동인 소재가 나옵니다.
트립 및 임신 관련 소재가 나오니 주의 부탁 드립니다.


9.
 작은 의심을 품은 채 다른 도검남사들을 살피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염려가 한낱 기우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는 반대로 의문은 점점 커지고 명확해졌다. 남사들의 미묘한 태도가 그들 이후에 현현한 히게키리와 히자마루, 후도 유키미츠를 지나 쥬즈마루 츠네츠구에게 까지도 변함이 없었을 뿐더러 외려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오덴타를 기준으로 전화 후의 남사들 간에는 분명히 무언가 차이가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토록 날을 세우면서도 그에 대한 이유를 입에 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그 차이가 정확히 어떠한 것인지, 또 그런 암묵적인 기준이 생기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좀처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 내막을 알게 된 것은 정말 뜻밖의 사건 때문이었다.


10.
 토모에가타 나기나타가 현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에 혼마루에 큰 다툼이 있었다. 사안 자체가 중하기도 했지만 그간 남사들간의 직접적인 충돌은 단 한번도 없었던 탓에 싸움이 불러온 여파는 상당히 컸다. 사건의 중심은 토모에가타였다. 토모에가타는 오오덴타 이후에 현현한 남사들 중에서 가장 심한 경계를 받았다. 그가 사니와가 자신의 첫 주인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입에 담았던 것이 문제였다. 아마도 대부분이 그 사실을 내켜하지 않았을테지만 그러한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주인에게 좋지 않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을테니. 그러나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정확히 표현자면 참지 못한 쪽에 가까울 터다. 헤시키리 하세베가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토모에가타와 말다툼을 하다 결국 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게 된 그는 진검대련을 벌이고 말았던 것이다. 말이 좋아 대련일 뿐이지 예와 법도, 형식 어느것 하나 갖추어 지지 않은 그것은 결국 현현한지 얼마 되지 않은 토모에가타가 크게 다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육체의 숙련도 차이가 컸으니 뻔한 일이다. 사니와가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혼마루 내부에서 도검남사가 제 본체로 동료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결코 숨겨서 얼버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으니까. 봄 햇살같이 늘 온유하던 사니와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화를 냈다. 오오덴타는 제 주인의 그런 얼굴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11.
  토모에가타의 회복이 끝난 후 사니와는 모두를 한 곳에 불러모았다. 사건 직후에 비하면 다소 차분해진 모습이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슬픈 것 같기도 했으며 어찌보면 제 자신이 다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런 주인을 지켜보는 남사들 역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오오덴타는 슬며시 오오히로마를 훑어 보았다. 안색이 창백한 사니와를 걱정하거나 죄책감에 안절부절하거나. 드러난 정도는 달랐지만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남사들'은 무언가가 좀 달랐다. 그것을 살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속내를 숨기는 것은 아무래도 육체의 숙련도 보다는 본인이 지닌 성정의 영향이 더 큰 법이니. 오오덴타는 비교적 감정이 잘 드러나는 몇 사람을 살펴본 끝에 그들이 품고 있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 두려움에 가까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헌데 어째서일까. 이번 사건이 심각한 것은 맞다. 혼마루 내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발도를 했고 사감으로 동료에게 상처를 입히는건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니.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헤시키리 하세베가 토모에가타의 말에 발끈해 혼자 저지른 일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헤시키리가 그런 언동을 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남사들 간에 흐르고 있는 미묘한 기류의 영향이 클테지만 그런 문제는 아무래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면 덩달아 죄책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당사자가 아닌데 그토록 겁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설령 주인이 이 모든 것을 깨닫고는 다른 이들에게도 제때 말리지 않은 죄를 묻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제가 봐온 사니와는 필요 이상의 가혹한 처벌을 할 심성이 아니며 저와 같은 도검남사들이 마땅히 치러야 할 죗값에 겁을 먹고 벌벌 떠는 것 역시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가장 동요하는 것이 쇼쿠다이키리 였다는 점이다. 이 혼마루에서 이번 일과 가장 거리가 먼 남사를 꼽는다면 그것은 아마 쇼쿠다이키리일 것이다. 근시인 그는 오늘도 내내 주인의 곁을 지켰다. 사건에 대한 소식도 분명 사니와와 동시에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거기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이 혼마루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제 속내를 감추는데 능숙한 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잠깐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사니와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던 침묵을 깨트렸다.

 -지금 이곳에 있는 도검남사 여러분은 모두 확실하게 저의 검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거쳐서 이 혼마루에 왔고 또 무슨 과거를 가지고 있건 똑같이 소중해요. 그렇기 때문에 전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려고 했고 앞으로도 그럴거에요. 전 그런 제 진심을 모두가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래요. 말로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있는 법인데 그동안 제 생각이 너무 안일했던거겠지요. 그러니 동료를 다치게 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을지라도 그 시작에 대한 것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미리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한 제 불찰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 여기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와 싸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여럿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누군가 참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렇게 일방적으로 참고 감정을 눌러 숨기는 것은 당장은 조용하니 괜찮을지라도 언젠가는 그 사람을 무너지게 만듭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부담을 짊어지지 않고 그런식으로나마 서로 속 마음을 주고받고 화해를 하며 조율을 해나가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저는 이 혼마루에 다툼을 아예 없게 하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모두가 조금만 더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그럴거라 믿고요. 그러니 이번 사고의 근본적이 원인에 대해서는 더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혼마루 안에서 고의로 동료를 다치게 하는건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특히 자신의 본체를 적이 아닌 동료에게 향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에요. 서로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로 출진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필시 부대의 다른 동료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만들겁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저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여러분이 다치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만큼은 상황을 감안한 처벌을 하겠지만 만약 이 이후에 또 이런 참담한 일이 생긴다면 지금처럼 무르게 넘어가지 않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 방향을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이 명령이 아닌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명령 대신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로 자리를 만들 일도, 또 명령을 할 일도 없게 해주세요.

 말을 마친 사니와가 모두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그에 몸둘 바를 몰라하는 남사들을 가만히 제지하는 사니와는 조금 전보다 훨씬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경직된 채 주인의 말을 듣던 남사들의 얼굴에도 그제야 안도가 스쳤다. 자리의 분위기를
 생각해 최대한 숨기고는 있는 것 같았지만 어쩐지 기뻐하는 것 같은 기색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쇼쿠다이키리 역시 눈에 띌 정도로 풀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오덴타는 그것들을 눈여겨 보는 사이 잠시 숨을 고르던 사니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모처럼 자리를 만들었으니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말하도록 할게요. 그간 우리 혼마루의 근시는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혼자서 쭉 맡아왔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 혼마루의 상황이 여러모로 조금 특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요. 하지만 상황이 많이 안정되었기도 하고 또 이대로 한 사람에게 계속 부담을 지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분들도 이제는 그럴만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근시는 모두가 공평하게 돌아가며 맡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실 이건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이에요. 진작에 말을 꺼냈어야 했던 일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여지껏 미루는 바람에 그동안 혼자 무리를 해온 쇼쿠다이키리와 본의 아니게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다른 모든 분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요.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그동안 수고 많았고 정말 고마웠어요. 어떤 방식으로 순번을 정할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지만 헤시키리 하세베는 근신 처분과 더불어 가장 마지막 순번이 될겁니다. 동료를 다치게 한 것에 대한 벌입니다.

 그 말에 그때까지도 뻣뻣하게 굳어있던 헤시키리 하세베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반면 오오히로마는 꽤나 소란스러워졌다. 그간 별 다른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어도 내심 그것을 서운하게 느껴왔던 남사들이 사니와의 새 방침을 몹시 반겼기 때문이었다. 근신 처분을 받았으며 가장 마지막 순번이 될 헤시키리 조차 미처 제 기쁨을 제대로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오오덴타는 조심스레 쇼쿠다이키리의 표정을 살폈다. 태연한 얼굴로 미소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의 금빛 눈동자에는 처음 봤던 날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짙고 서늘해보이는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다.


12.
 갑작스런 소집이 끝난 뒤 늦은 저녁 무렵, 사니와는 일부 남사들을 집무실로 다시 불렀다. 미이케와 겐지 형제, 후도 유키미츠, 쥬즈마루 츠네츠구, 사다무네 파의 세 명과 토모에가타까지. 모두 오오덴타 이후에 현현한 남사들이었다. 부름을 받은 이들이 방에 도착했을 때  사니와는 드물게도 혼자 있었다. 근시라는 명분으로 밤 늦게까지 한시도 주인의 곁을 비우지 않았던 쇼쿠다이키리마저 없는 것을 보면 일부러 주변을 비운 것 같았다. 이곳에 오던 길에 사다무네의 단도가 어둠 속을 흘끔거리던 것을 보면 그는 아마도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모두 어서오세요. 편하게 앉아요.
 -주인, 아직도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괜찮은가?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토모에가타야 말로 정말 괜찮은거죠?
 -나는 괜찮다. 주인 덕분에 다 나았으니까.
 
 그런 토모에가타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후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던 사니와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을 다시 모이게 한 것은 꼭 들려줄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은 여러분이 그냥 모르고 있는 것이 여러분 모두가 똑같아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일을 겪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서요. 사실 지금 이곳에 모인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오히려 짐이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친 사람까지 생긴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는 서로를 이해하는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관없어. 그 말은 어떻게 보면 여태껏 주인 혼자 그 짐을 짊어져왔다는 뜻 아니니? 난 그게 더 싫은걸.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으음……. 동생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히게키리의 말에 히자마루가 맞장구를 쳤다. 그는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어하는 기색이었지만 그 말 만을 하고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맞아. 내가 아픈 것은 괜찮지만 주인님이 힘든 것은 싫은걸!
 
 그렇게 말하며 사니와의 앞으로 튀어나가려던 킷코를 붙잡은 것은 그의 양쪽에 앉아있던 모노요시 사다무네와 타이코가네 사다무네였다.

 -아앗, 힘든 주인님을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 일단 주인 이야기부터 들어보자구.
 
 사다무네의 검들이 때아닌 실랑이를 했다. 그때 오오덴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가 뭐지?

 어느 틈에 붕 뜬 것 같은 분위기를 순식간에 차분하게 만드는 낮은 목소리에 킷코 사다무네가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했다. 사니와가 말했다.
 
 -그동안 일부러 말하지 않았지만 전 이 혼마루의 첫 번째 사니와가 아니에요.
 -으응? 혹시 빼앗은거니?
 -형님!
 
 히게키리의 말에 기겁한 히자마루가 그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괜찮다는 뜻으로 히자마루에게 소리 없이 웃어보인 사니와가 말을 이었다.
 
 -물론 그건 아니고요. 제가 이곳에 왔을 때 그분은 이미 계시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던건지 그분이 어떤 분이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이곳은 부정과 재액이 위험 등급 수준인 혼마루였다고 해요. 사니와들 사이에서는 블랙혼마루라고 부르는 그런 곳이요.
 
 그 말에 모두가 놀란 얼굴을 했다. 여기 모인 이들이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뜻밖의 사실이었다.
 
 -주인이 정화계였던가? 들은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정화 후에 바로 정착을 하게 된 경우인가?
 
 소하야노츠루기의 물음에 사니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전 원래 사니와가 아니었고 여기 온건 게이트의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 때문이었어요.
 -갑작스러운 일로 정말로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쥬즈마루가 말에 토모에가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니와를 바라 보았다.
 
 -갑작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생각만큼 고생을 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여기 왔을때 혼마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아니 정확히는 처음 눈을 떴을 때 라고 해야하나?

  그때 사니와의 말을 듣던 히자마루가 물었다.

 -눈을 떴다니 그건 무슨 뜻이지?
 -사실 전 제가 어쩌다 어떤 식으로 게이트를 넘어오게 됐는지 잘 몰라요. 그냥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혼마루였다, 뭐 그런 느낌이려나요. 이곳에 오기 전의 마지막 기억이 집에서 잠이 들었던 거니까 아마도 그 상태에서 온게 아닐까 해요. 미츠타다도 제가 잠이 든 채 게이트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아무튼 제가 그렇게 깨어나지 못하는 사이에 대부분의 부정과 재액이 씻겨 나갔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눈을 떴을 때 미츠타다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아주 조금 남아있던 것들도 제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에 없어져버렸다고 했고요.
 -…쇼쿠다이키리?
 
 예상치 못한 곳에서 쇼쿠다이키리의 이름이 입에 오르자 오오덴타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네. 제가 여기 와서 제일 처음 만난게 미츠타다거든요.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그가 계속 근시였던건가?
 -네. 초기엔 근시가 아니라 거의 사니와 대행 수준이었어요. 그때 제가 많이 혼란스러워 하는 바람에….
 -저런. 꽤 힘들었겠구나.
 -아무래도 그랬을거에요. 그때부터 쭉 혼자 근시를 해왔으니까.
 -아니, 그의 이야기가 아니야. 내가 말하는 쪽은 너란다.
 -…그래요? 음. 그 부분은 딱히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육체적인 고생은 거의 하지 않았기도 했고 오히려 우울해 하는 절 받아주느라 미츠타다나 다른 분들이 굉장히 애를 썼기 때문에 제가 힘들었다고 말하기는 조금 민망하네요.
 
 그 말에 히게키리가 아주 잠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묘한 얼굴을 한 것은 히자마루도 마찬가지였다. 오오덴타는 사니와와 히게키리의 대화에서 얻은 실마리들을 그간 자신이 느꼈던 의문들 사이에 끼워넣어보았다. 이제서야 무언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저는 이 혼마루가 정확히 어떤 상태였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전 사니와분을 만난 적도 없고, 또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잘 몰라요. 하지만 다들 지닌 상처가 꽤 깊었다는건 알아요. 적어도 그건 직접 봤으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제가 본의 아니게 또 다른 상처를 입혀버렸어요. 이런 곳은 나랑 관계가 없다느니 다 필요 없다느니 하면서. 지금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전 처음엔 사니와가 될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땐 뭐가 됐든 밀어내기만 바빴어요.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그런 자신의 말에 방안에 있던 이들이 놀라는 기색을 보이자 사니와가 황급하게 덧붙였다.
 
 -앗,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마음을 확실히 정한 상태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관리국에서 제 거취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새 혼마루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 바람에 모두 많이 불안해 했어요. 그래서 확실히 결단을 내려서 이 혼마루에 머무르기로 결정을 하고도 단도를 시도하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먼길 돌아와서
 제가 직접 현현한 분들이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이에요. 오오덴타가 가장 처음이었고요.
 
 -…그랬나.
 
 처음. 사니와의 말을 듣는 동안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그 말을 직접 듣게 되자 가슴에 기묘한 파문이 일었다.
 
 -…그런데 하필 나같은 걸.
 
 그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이 구석에 앉아있던 후도 유키미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왜 그런 말을 해요. 전 후도가 혼마루에 와준게 정말 고마운데.
 
 사니와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인 후도가 몸을 웅크렸다. 그런 후도의 머리를 쥬즈마루가 살며시 쓰다듬어주었다. 그때 히게키리가 말했다.
 
 -이야. 대단한걸. 첫 현현이 천하오검에 지금은 무려 둘 씩이나. 어쩐지 조금 부러운걸. 너와 처음 만난게 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앗.
 
 그 말에 당황한 히자마루가 히게키리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아프잖니, 아시마루야.
 -형님 난!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이 자리에서 굳이 그런 말은 입밖에 낼 필요는 없지 않나. 내가 대신 사과하지. 오오덴타 미츠요.
 -상관 없다.
 
 오오덴타의 대답에 히게키리가 묘한 눈웃음을 지었다. 사니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이 여러분에게 거리를 두는건 아마 이런 이유들 때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모를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아는건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어요. 제가 사니와인 이상 모를 수도 없고 몰라서도 안되는 거니까요. 오오덴타를 단도 하던 날 저는 모두 그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었어요. 결국 제 생각이 빗나갔지만 그래도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서로 익숙해지면 괜찮아질거라고 여겼던거죠. 그런 제 안일함이 토모에가타를 다치게 만든거나 다름 없는 거고요. 여러분을 현현시킨걸 절대 후회하지는 않지만 여지껏 영문도 모른 채 마음고생을 하게 만든건 정말 할 말이 없네요. 미안해요.
 -아니, 그렇게 생각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괜찮으니까.

 토모에가타가 말했다.

 -나도 괜찮아 주인님! 이런 사랑이 있는 아픔은…읍읍!

 그에 이어 질세라 킷코가 끼어들었지만 모노요시에 손에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미안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홀로 부담을 지고 계셨던 것은 당신이니 오히려 저희가 사죄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쥬즈마루의 말에 사니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게 사니와인 제 일이니까요.

 그러자 간신히 모노요시의 손을 떼어넨 킷코가 외쳤다.

 -난 주인님이 아픈게 싫은데!
 
 그리고 사다무네 파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히게키리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다 보면 무너지기도 쉬운 법이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해. 나도 있고 그래, 히게키리도 있잖니.
 -…형님은 혹시 혼자만을 강조하고 싶은 것인가?
 -응? 무엇이 말이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겐지형제를 보며 소하야노츠루기가 중얼거렸다.
 
 -참 재미있는 형제란 말이야.
 
 킷코의 엉뚱한 말이나 겐지 형제의 실없는 대화는 뜻밖의 이야기들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는데는 제법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주인의 얼굴이 한결 부드럽게 풀린 것을 보고 모노요시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집무실이 도로 조용해지자 사니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오히려 신참의 입장인 여러분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이 방에서 들은 것은 비밀로 하고 내색하지 않되 다른 분들의 불안감이나 경계심을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해요. 그리고 혹여나 그걸 문제로 힘든 일이 있다면 저에게 바로 찾아오시고요. 저에겐 모두가 소중한 만큼 어떤 입장이 되었든 일방적으로 참기만 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니까요.

 
13.
 집무실에 있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밀도 높은 영력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사니와가 결계를 치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느틈엔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쇼쿠다이키리를 눈치채지 못한 것과 그가 지나칠 정도로 초조해 보인건 아마 그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나오기가 무섭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고 하는 쇼쿠다이키리를 히게키리가 붙잡았다.

 -늦은 시간인데 이제 주인도 쉬어야 하지 않겠니?
 -어찌됐든 난 아직 근시인걸. 내일부터의  근시 문제 때문에라도 주인과 상의 해야 할게 있어서 말이야.

 가볍게 히게키리의 손을 떼어낸 쇼쿠다이키리가 말했다.

 -주인, 근시 일로 상의할 것이 있는데 들어가도 될까?
 -안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들어오세요.
 -자 봐. 그럼 난 들어가볼게.
 -주인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네. 그래도 너무 무리 시지키는 말렴. 모두의 주인이잖니.
 -그럴리가 있겠어? 신경써주는건 고맙지만 주인은 내가 잘 챙길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 그렇겠지.

 조금 전과는 다르게 즐거운 얼굴을 한 쇼쿠다이키리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14.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던 오오덴타는 문득 몸을 돌렸다. 아까 전 오오히로마에 모여있을 때 쇼쿠다이키리가 보였던 표정의 변화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기척을 죽인 채 집무실 근처 후미진 곳에 몸을 숨기려던 오오덴타는 예상치 못한 선객과 마주쳤다. 자신보다 먼저 돌아갔었던 겐지 형제였다. 히게키리가 빙그레 웃으며 조용히 검지 손가락을 입 앞에 갖다댔다. 오오덴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대강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결계를 치지 않은 모양인지 둘의 대화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할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그동안 쭉 생각했던 일이에요. 모두를 생각한다면 그 편이 좋지 않을까 해요. 미츠타다에게도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괜찮은데.
 -미츠타다가 괜찮다고 해도 혼자 일을 도맡는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그리고 나에게 모두가 소중한 만큼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이건 좀 더 안전하고 튼튼한 혼마루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내가 사니와로서 내린 결정이니까 미츠타다도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계속 고생했으니까 이제 자신만을 위한 시간도 좀 갖고요.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네. 대신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줄래?
 -근시에 대한 거라면 안돼요. 그 문제는 여기서 끝이니까.
 -딱 부러지네. 물론 그런건 아니고 연인으로서 하는 부탁인데 그래도 안될까?
 -그렇게 말하면 또 어쩔 수 없네요. 뭔데요?
 -주인의 명령이니 낮 시간은 모두를 위해 양보할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드는 것은 슬프지만 그래, 모두를 생각한다면 그게 맞는 일이겠지. 대신 해가 진 뒤, 네가 사니와가 아니라 그냥 너인 시간은 꼭 나와 함께 보내줬으면 좋겠어. 주인과 도검남사가 아닌 연인으로.
 -뭐예요. 이참에 자신만의 시간을 좀 가져 보라니까.
 -그게 날 위한거야. 그리고 그동안 계속 같이 있어서 잘 몰랐던건데 생각해보니까 우린 연인이면서 정작 연인처럼 보낸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이참에 이 혼마루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더 만들고 싶어.
 -그건 또 그렇네요.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
 -아참, 혹시 뭔가 갖고 싶은건 없어요?
 -응? 왜?
 -미츠타다가 그동안 고생이 많았던건 사실이니까 감사의 선물이라도 하고 싶어서요. 처음부터 날 많이 도와줬잖아요.
 -…음. 그런 말을 들으니 엄청 기쁘긴 한데 지금 딱히 생각나는게 없네. 나중에 말해도 될까?
 -알았어요.

 대화를 전부 듣고 난 히게키리가 싱긋 웃었지만 결코 즐거워 보이는 웃음은 아니었다. 어쩐지 언짢은 기분이 드는건 히자마루나 오오덴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방을 나서는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몹시 기분이 좋아보였다.


15.
오오덴타가 방에 돌아온 것은 소하야츠루기가 잘 준비를 전부 끝낸 다음이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뒤척거리는 오오덴타에게 소하야노츠루기가 말했다.

 -아까부터 쭉 생각해봤는데 우리는 그렇다 치고 주인이 힘들 땐 대체 누가 이야기를 들어주는걸까? 쇼쿠다이키리?
 -…그렇겠지.

 연인이니까. 그는 뒷말을 삼키며 조금 전에 엿들었던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의도치 않게 이곳에 와서 사니와가 된거라면 주인도 마음 고생이 심했을텐데. 어째 아까 본인 이야기는 거의 없었단 말이야.
 -그랬지.
 -사니와가 될 생각이 없었다면 처음엔 돌아가고 싶었던 거겠지? 고향으로.
 -……그런 이야기가 되는건가.

 당연한 일이었고 짐작했던 사실이지만 막상 그말을 직접 들으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주인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왜 돌아가지 못한거지? 그래서 우리가 현현할 수 있었던거긴 한데 어쩐지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글쎄.

 만일 사니와가 지금도 돌아가고 싶어 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말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이미 다 털어놓아서 말할 필요가 없는걸까. 만약 정말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았다면 상대는 분명 쇼쿠다이키리겠지.
 -…….
 -조금 질투는 나지만 그래도 후자였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
 -…….
 -형제, 자?
 -잔다.
 -…뭐야.

 소하야노츠루기의 말에 오오덴타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리로는 그러길 바라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마음으로는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주인이 왜 그에게 아픔을 털어놓아야 하지? 그게 정말 좋은 일일까? 어떻게 보면 그 역시…….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애써 상념을 털어냈다. 상대가 누구든 주인이 혼자 마음 고생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 그게 맞는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오덴타는 눈을 감았다.


16.
 근시 자리를 내어놓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의외로 제법 여유로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히게키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얼마 안갈거야.

 그 말 그대로였다. 쇼쿠다이키리의 인내심은 빠르게 바닥났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 첫 일주일, 근시를 맡게 된 남사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오오덴타 이후에 현현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내켜하지 않는 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가 어찌됬건 제비뽑기는 모두의 앞에서 공평하게 이루어졌다. 거기에 사니와가 직접 부탁까지 한 마당이니 그저 조용히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길 고대할 뿐이었다. 그러나 쇼쿠다이키리는 그렇지 못했다. 내내 정신이 팔려 하지 않던 실수를 거듭 저지르던 그는 그렇게 딱 일주일이 되던 날 마침내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그날의 근시는 히게키리였다. 같은 시각 집무실에 있었던 소하야노츠루기에게 듣기론 그가 간식을 가져다 주러 들렀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 사니와에게 제 겉옷을 덮어주는 히게키리를 보았다는 모양이었다. 히게키리는 주인과 그의 대화를 엿듣던 날 밤, 오오덴타에게 했던 것처럼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조용히 웃었다고 한다. 본인의 의도가 어떠했건 히게키리의 미소는 쇼쿠다이키리에게는 도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도 차마 주인을 깨울 수는 없었던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뒤돌아 나갔다던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한참동안이나 정원 구석을 서성렸다고 했다. 그 모습은 오오덴타도 직접 목격했다. 원정을 나가기 위해 게이트로 향하던
 길이었다. 언뜻 보아도 심상치 않은 기색이라 몹시 신경이 쓰였지만 그날의 근시는 히게키리였고 집무실에는 히자마루와 소하야노츠루기가 함께 있을 터였다. 거기에 멀찌감치서 조심스레 쇼쿠다이키리를 살피던 타이코가네를 발견하고는 어느정도 마음을 놓았었다. 오오덴타는 자신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는 타이코가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부대원들과 함께 게이트를 넘었다. 그날 오오덴타가 쇼쿠다이키리와 다시 마주한 것은 원정에서 돌아온 직후인 늦은 저녁이었다. 원정부대의 부대장이었던 그는 사니와에게 막 보고를 마치고 집무실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문 앞에서 마주친 쇼쿠다이키리는 평소의 말쑥한 모습과는 다르게 침의에 하오리를 걸친
 차림이었던 그는 막 씻은 참인지 머리카락 마저 축축하게 젖은 채였다.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그를 오오덴타가 붙잡았다.

 -주인은 이미 내실로 들어갔다. 용건이 있다면 내일 날이 밝은 후에 제대로 된 차림새를 하고 찾아오도록 해.
 
 그 말에 쇼쿠다이키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지 않을까?
 -어째서지?
 -지금 난 도검남사로서 여기 온게 아니니까.
 -그건 무슨 뜻이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주인의 연인이기도 하다고. 한마디로 이런 모습으로 늦은 시간에 멋대로 찾아와도 괜찮다는 뜻이지. 주인의 내실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고.

 오오덴타의 팔을 뿌리친 쇼쿠다이키리가 성큼성큼 안으로 향했다. 낮에 보았던 그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 오오덴타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집무실 바깥에서 가만히 안쪽을 살폈다. 쇼쿠다이키리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딱히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내실로 이어지는 문 앞에 선 그가 사니와를 불렀다.

 -―. 혹시 벌써 자는걸까? 할 말이 있는데.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사니와명으로 주인을 불렀다. 어쩐지 과시하는 듯한 태도였다. 아마 그럴 수 있었다면 이름을 불렀으리라.

 -미츠타다? 갑자기 어쩐일이에요?

 사니와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무슨 일 있어요?

 평소와는 다른 그의 차림에 당황한 것은 사니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니야.
 -뭐길래 그래요?
 -혹시 오늘 같이 자도 될까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쇼쿠다이키리의 시선은 분명 사니와에게 고정되어있었지만 오오덴타는 어쩐지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뜻밖의 말에 놀란 모양인지 사니와가 짧은 침묵 끝에 열었다.

 -…그건….
 -아니, 이상한 뜻이 아니라. 그게 사실…….
 -미츠타다?
 -요즘 악몽을 꿔. 그래서 제대로 자기가 힘들어.
 -악몽이요?
 -응. 네가 사라지고 이 혼마루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그런 꿈.
 -미츠타다….
 -잠이 드는 순간 나는 꿈 안에서 눈을 떠. 깨어난 나는 너와 함께 한 순간들이 한낱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해. 모든 것이 예전의 그대로거든. 숨막힐 정도로 부정과 재액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모두 상처투성인데다 잔뜩 겁에 질려있고. 그래서 나는 꿈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널 찾아 해매는거야. 하지만 어디에도 너는 없고 마침내 그 사람과 마주쳐. 그리고 그는 아이들에게…….
 -말 하지 말아요. 그만해도 돼요. 미츠타다.
 -네가 걱정하니까 말 안하려고 했는데 잠을 못자니까 자꾸 실수를 해서 곤란해. 이대로는 전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말 것 같아…. 그래서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서 참고 잠을 자보려고 했어. 그런데 방에 혼자 누워 있으면 잠이 들지도 않았는데 꿈이 시작된 것 같아서 눈조차 제대로 감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나는 아와타구치처럼 같은 도파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츠루씨나 카라쨩이 있다지만 둘은 혼자 자는 것을 더 좋아하고 사다쨩도 자기 형제가 있으니까. 지금 나한테는 너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고민하다가 결국 여기로 왔어. 네가 확실히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면 조금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같이 있게 해주면 안될까? 맨바닥이라도 괜찮으니까……

 사니와는 본인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힘들어하는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성정이 아니었다. 물론 쇼쿠다이키리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주인이 마음 쓸 것을 알면서도 굳이 제 악몽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 놓았을 것이다. 오오덴타는 함께 내실로 향하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어쩐지 조금 씁쓸한 기분으로 방에 돌아갔다.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던 그날 밤과 같은 비슷한 기분이었다. 다음날 마주친 쇼쿠다이키리는 예전처럼 여유를 되찾은 것 같은 모습이었고 당연하게도 그는 단 하루만 사니와의 방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17.
 그로부터 일주일 후, 오오덴타가 근시를 맡게 된 날이었다. 평소였다면 진작에 집무실에 나와 있어야 할 사니와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었지만 밤 사이 무슨 일이 있었다면 쇼쿠다이키리가 먼저 알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혼마루가 여태 조용할리가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오오덴타는 묵묵히 집무실에 앉아 사니와를 기다렸다. 내실의 문이 열린건 그로부터 몇시간이나 지난 후, 오후가 거의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그리고 안에서 나온 것은 집무실의 주인이 아닌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였다. 그는 사니와의 방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른 아침마다 꼬박꼬박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차림을 정제 하곤 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그가 한껏 벌어진 침의의 앞섶을 느긋하게 여미면서 말했다.

 -주인은 오늘 몸이 안좋아서 못나올거야. 급한 것들은 내가 대신 처리하기로 했으니 조금만 기다려줘. 얼른 씻고 올게.

 그렇게 말한 쇼쿠다이키리는 오오덴타가 입을 열 새도 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오오덴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마 쇼쿠다이키리가 기다려 주었다고 해도 그는 주인의 안부를 물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뻔했으니까. 현현 후 처음 근시를 맡은 날이었지만 그날 오오덴타는 단 한번도 사니와를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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